목록히딩크 (27)
햇살과산책
아시안게임 축구가 어느덧 4강전까지 펼쳐지기 직전입니다. 손흥민 조현우 황의조 황희찬 이승우등 신구조화를 이루어 금메달을 목표로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인 병역까지 해결할려는 대표팀으로서는 올해부터 박항서 감독이 지도하면 놀라운 기세로 올라온 베트남과 4강전을 치루게되었습니다. 이전같으면 베트남과의 경기라면 크게 신경쓰지 않을 정도지만 우리도 잘알고있는 박항서 감독 한명 바뀌어 같은 선수들로 놀라운 결과를 내고있기에 그냥 지나칠수없는 상대.. 병역이라는 동기부여가 되어있는 우리팀과 서로 체력이 많이 방전된 상태에서 정신력이 매우 높은 베트남의 대결은 흥미유발 히딩크의 매직을 베트남에서 그대로 보여주고있는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이 메달을 거머쥐기 직전까지 내달린 모습이 매우 자랑스럽긴하지만 우리선수들이 확실한 ..
이탈리아를 물리치고 올라온 스웨덴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습니다. 상당히 거칠게 나왔고 피지컬이 좋았지만 세밀함은 떨어지는 팀이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손흥민을 데리고 있지만 아쉽게 토트넘의 에릭손같이 경기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가는 선수나 알리나 케인같은 번뜩이는 동료가 없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던것이기에 다른방식의 해법을 기대했으나 역시나가 되어버린 경기.. 경기 내내 빛난건 조현우 골키퍼.. 골키퍼가 빛난다는건 그만큼 공세에 시달렸다는 이야기이고 유효수팅이 제로였던 우리팀의 경기였기에 답답했습니다. 다만 우려했던 것보다 경기력은 괜찮았지만 기대치가 높지않았기에 월드컵 무대에서 결과를 가져올만큼은 아니었던 경기라고 볼수있습니다. 이번대회 비디오 판독시스템인 VAR을 통한 판정으로 인해 김민우 반칙이..
지난 2002년 긴장되던 첫경기 상대는 폴란드였습니다. 물론 당시의 폴란드는 지금보다 객관적인 전력은 약세였습니다. 유럽팀중에서는 조금은 떨어지는 전력이었고 유명한 선수가 당시에 리버풀 주전 골키퍼 두덱이었고 지금의 레반도프스키정도의 지명도를 가진 선수도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개최국이라는 이점으로 매우 기대감이 높았습니다. 결국 경기결과는 황선홍의 감각적인 선제골과 유상철의 강력한 추가골로 2:0으로 낙승하면서 4강신화의 서막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2011년도에 친선전이 있었는데 이때는 박주영과 레반도프스키의 골로 2:2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이때는 교체를 많이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정식경기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 - https:..
라이브로 월드컵을 보기 시작한게 1986년부터입니다. 지금까지 월드컵에서의 우리나라 경기는 라이브로 전부 보았고 타국가의 경기도 관심가는 것들은 챙겨서 봐왔는데.. 역대 우리나라의 월드컵 도전은 2002년 이전까지는 말그대로 험난했습니다. 1986년 이후부터는 아시아의 호랑이로 군림하면서 지역예선은 비교적 가볍게 통과한편이지만 월드컵 본선에서의 여정은 편했던적은 한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것입니다. 아시아 지역은 갈수록 실력차가 줄고있고 이번 월드컵만해도 우리나라는 탈락의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나며 역대급으로 말이 많은 대표팀이기도합니다. 돌이켜보면 지역예선에서 도하의 기적을 연출하며 이라크의 도움으로 어렵게 나갔던 94년 월드컵에서는 조별예선에서 최강이던 스페인과 독일을 만나 상대를 혼쭐낸적도 있었..
최근 히딩크 감독을 국대로 데려오자는 여론이 비등해졌습니다. 블로그에서도 몇번 언급한것처럼 개인적으로는 어떤식이던 히딩크 감독이 우리나라 국대에 기여하길 기대합니다. 신태용 감독의 거취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에앞서 우리나라 축구의 경기력 향상이 더욱 큰 명제가 되어야합니다. 이명제 속에서 접근해야만 국민적 공감대와 해결책이 나오기때문입니다. 오래전 1986년 월드컵에 진출했을때 때아닌 차범근 논란이 있었습니다. 분데스리가에서 마무리하던 시절이지만 아직도 활발하게 활약하던 시절이었는데 여러가지 이유중에는 예선에도 참가하지 않아 형평성에 문제가있고 그동안 다져놓은 팀워크를 해친다는 이유로 축구협회등에서 의견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당시 여론과 박종환등 축구인들의 강한 주장으로 출전했습니다. 물론 차범근도 소속팀..
최근 히딩크 감독 복귀설이 나오면서 축구 마니아층과 전문가들은 모두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아마도 현실적이고 디테일을 가졌기에 나오는 부분.. 한가지 아쉬운건 맥락을 짚어가는 것보다 한쪽에서서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태도를 양쪽이 보이는 모습을 자주 볼수 있는데 지금과 같은 히딩크 현상이 나온건 결과적으로 국대 축구팀의 경기력 저하와 투혼이 사라진 경기내용때문입니다. 2002년 국대는 시작지점을 돌이켜보면 지금보다 훨씬 월등한 스쿼드였다고는 할수없습니다.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는 페루자의 안정환정도였고 그도 완전한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잡은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국가대표 축구가 가지는 위상은 사회적으로 따지면 굉장하고 대단합니다. 선수와 관계자 그리고 전문가나 마니아층의 전유물도 아닌데 여론..
히딩크와 우리는 1998년에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는 98년 월드컵 상대팀인 네덜란드의 감독이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베르캄프를 비롯해 익히 알고있던 반데사르 코쿠 데부어 오베르마스 다비즈 클루이베르트등 쟁쟁한 선수들로 꾸려진 팀이었고 우리나라는 5:0으로 패하면서 대회도중 차범근 감독이 전격적으로 경질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파장은 아주 강한 임팩트였습니다. 다음 월드컵은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 진출이 1차목표일 정도였는데 조금 상황이 안좋은채 무직이던 히딩크를 데려옵니다. 대회 직전까지 물론 말은 엄청 많았고 국내 축구관계자들의 평가도 좋지 않았습니다. 평가전에서 체코 프랑스등 센팀들과 붙어 5:0으로 깨지기 시작하면서 별명이 오대영이란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그전까지 평가전이라면 만만하던 아시..
5:0으로 대패하며 차범근이 경질되던 경기.. 대략난감했던 1998년 월드컵 히딩크가 이끌던 네덜란드와의 대결... 혜성처럼 나타나 중거리슛을 때리던 십대 새내기로 나왔던 이동국은 한국의 희망이라는 보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1998년 네덜란드전 당시 영상 - https://youtu.be/ZLfAn1qvjK0 그랬던 이동국은 국내용 월드컵예선용 그리고 게으른 천재란 소리까지 들으면서 월드컵과는 인연이 별로였는데... 이제는 마흔이 다된 축구 선수로는 환갑이 훨씬지난 나이에 다시 대표팀에 승선...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전에서 보여준 아쉬운 장면을 만회하는 모습이 나오길 고대해봅니다. 이런 이동국까지 다시 불러들일만큼 매우 다급한 상황의 신태용호.. 이동국을 폄하하는게 아니라 상황이 매우 안좋음..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