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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람/운명적인 만남

큰어머니 부고

햇살과산책 2011. 11. 1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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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오전 한통의 전화
수원 둘째 큰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머리속에 떠오르는 여러가지 아련한듯 하면서 뭔가 복잡한 것들...

8살 국민학교 1학년 시절 한학기 끝나고 갑자기 다른동네로 이사를 간 상황
나는 우겨서 전학을 가지 않았고 결국 버스로 통학...
학교 근처에 있던 큰어머니댁.. 마당에는 봄이면 냄새가 진동하던 라일락 나무가 있었고..
또래 사촌들도 있어 당연히 제집드나들듯 들르는 코스...
당시 세살던 큰어머니댁의 주인아주머니는 특이하게 이슬람교도로 기억(정확히 모르겠슴.. 당시에는 사촌형이 회교도라고 스치듯 이야기했던것만 기억..)하는데 마법주문같은 기도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

날으는 원더우먼이 유행하던 시절... 왠지 회색이어야만 할것같은 70년대...
30원이던 차비는 딱지를 사거나 대강 학교 문방구에서 껌뽑기로 날리고...
터벅터벅 고등동을 가로질러 집이있던 화서동까지 걸어가던 유년시절...
때때로 나와 같은 상황의 친구들과 같이 다니기도 했었는데 역전 지하도를 가로질러 화서동 서호방향으로 가기도 했는데 
지금은 물론 아파트가 들어서고 작은서호라 불리던 곳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논밭 중간중간은 공터에다 돌산이라는 자그마한 산이 있었고 그곳은 동말이라 불리던 곳.. 판자집이던 친구네서 누나에게 얻어먹던 샛노란 귤차가 흑백사진속의 유일한 컬러처럼 또렷히 기억나기도... 흑백TV 시절이라 기억도 흑백이어야 할듯한 이 느낌은 무엇일까?

도시락 2개 싸가지고 다니던 고3시절..
서울에서 통학하기 너무멀어 여름방학 끝나고 세류동 큰어머니댁에서 다니던 시절...
그때는 철이없어 매일매일 도시락 싸주는것이 대수롭지 않은일이라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보통일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서는 어른되었다며 동네 양화점에서 맞춤구두를 사주시기도 했는데 당시 신었던 신발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큰어머니는 당뇨합병증으로인해 몇년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계셨지만 두어번 찾아뵌게 고작... 항상 큰어머니 생각만하면 뭔가 걸리긴했는데 막상 떠나시니 마음 한구석이 안타까움과 아련함이 밀려오더군요... 조금더 찾아뵙고 했어야하는데 평소에 부족하다 외쳐대던 시간이며 갖가지 자기 정당화의 변명들이며...

수요일 아침 영구차와 함께 장지로 출발..
오열하는 가족들과 육신은 마지막 인사를 하시고...
영정사진속의 온화한 모습으로 오롯이 남아 마음과 기억속에서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시고 있습니다...

* 영상으로 담아놨는데 십년후쯤 사촌형과 누이들에게 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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