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추억의 롤라장 음악 - 밤비나 David lyme - bambina 1985년

Posted by 하루하루 추억보관소
2019.06.25 06:10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1980년대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필리핀(중국이나 베트남은 공산국가이던 시절)등지에서는 유로댄스라는 장르가 각광을 받았습니다. 단순하게 댄스뮤직이라고 명명된 디스코풍의 음악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메탈이나 락은 매니아층과 대중성이 혼재하긴했지만 매니아적 성향이 더 강하게 나왔는데 신나고 가벼운 유로댄스는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던 당시에 리어카를 비롯해 길거리에서도 심심찮게 들을수 있던 시절이었기에 한순간 선풍적인 히트가 가능했던 시절..

 

당시에 청소년들에게는 롤라장이 인기였는데 그곳에서는 신나는 댄스음악을 하루종일 틀어주었습니다. 영화에서 가끔보면 탈선 청소년들이 맹활약하는 곳으로 묘사되고 없던것도 아니지만 실제로는 당시의 국민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큰 부담없이 가서 하루종일 놀다올수 있는 약간의 해방감을 느낄수 있는 일탈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나오는 신나는 음악들은 대부분이 가볍게 들을수있는 미국과 유럽의 댄스뮤직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모던토킹 조이 런던보이즈등 80년대 중반 이공간에서 주름잡던 주옥같은 곡들이 떠오릅니다. 그중에 오늘 기억이 나는건 데이비드 라임(David Lyme) 밤비나(Bambina)인데 이탈로 디스코(Italo-Disco) 스타일의 노래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댄스음악이 불렀고 유럽에서 유행하던 양식 유로댄스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나이트 클럽에서 자주 틀었기에 닭장음악이나 롤라장 음악으로...

 

 

모델로도 활약하던 데이비드 라임

 

 

밤비나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s://www.discogs.com/artist/19796-David-Lyme

 

 

노래듣기

 

 

 

 

데이비드 라임은 스페인 출신으로 본명은 조르디 쿠비노로 1966년생인데 밤비나는 1985년에 발표된 곡으로 스무살도 안되어 발표된 싱글 유럽과 아시아에서 큰 반응을 얻었습니다. 방한도 한번했었던것으로 기억하는데 밤비나는 매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던 노래로 내용은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데이비드 라임은 모델로도 활동했고 현재는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

 

 

웹사이트 - https://jordicubino.com/

 

Jordi Cubino – Musical Productions

Jordi Cubino, compositor y productor español es sin duda uno de los profesionales que a lo largo de los últimos años ha tenido una de las mayores proyecciones internacionales en el campo musical de su país. De formación clásica, posee la carrera de música

jordicubino.com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jordicubino/

 

 

Jordi Cubino(@jordicubino)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팔로워 37.2천명, 팔로잉 408명, 게시물 46개 - Jordi Cubino(@jordicubino)님의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보기

www.instagram.com

 

데이비드 라임 공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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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1980년대적 리메이크 루이스 터커 찰리 스카벡 - 미드나잇 블루 Midnight Blue 1982

Posted by 하루하루 추억보관소
2017.08.28 02:37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1980년대의 팝음악은 전세계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많은 주목을 받았고 아무래도 빌보드 차트가 미국에서 발표되는 것이기에 미국 아티스트들이 많았지만 다양한 국적의 가수들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영어권이라 그런지 영국 아티스트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노래를 부른 루이스 터커는 성악가로 영국 출신입니다.  오페라 가수이지만 팝음악으로 이름을 먼저 알리게됩니다. 이노래는 원래 베토벤의 피아노 소타나 비창 2악장으로 루이스 터커가 데모 제작한 미드나잇블루를 이전에 만났던 팀 스미트에게 건넸고 데모를 친구이자 음반제작자인 찰리 스카벡에게 보내 프로듀스하고 동시에 싱글곡 Midnight Blue에서는 같이 노래를 부르며 완성됩니다. 사람에게 있어 인연이란게 이런듯..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이를 알아주고 좋은길로 동행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앨범은 1982년에 발표되었고 우리나라에서 1984년 무렵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원곡인 베토벤의 비창이 가지는 익숙함과 엄숙함 그리고 루이스 터커의 탁트인 목소리가 어우러지고 찰리 스카벡의 분위기 있는 탁한 목소리도 조화가 매우 잘된 곡입니다.



루이스 터커 (Louise Tucker)












Midnight Blue     - 1982



"Midnight Blue"

"Only for You"

"Hush"

"Shadows"

"Waiting for Hugo"

"Voices in the Wind"

"Jerusalem"

"Graveyard Angel"

"Gettin' O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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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감미롭고 매력적인 목소리의 마이클 프랭스 - 안토니오스 송 Antoni's Song 1977

Posted by 하루하루 추억보관소
2017.08.25 03:39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브라질의 삼바와 쿨재즈를 합쳐진 장르가 보사노바입니다. 감미로운 매력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마이클 프랭스의 안토니오스 송은 보사노바의 대가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에게 헌정하는 노래입니다.


1944년 캘리포니아 출생인 마이클 프랭스는 고등학교때 밴드를 결성해 노래하기도 했지만... 음악은 부모님의 반대로 UCLA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며 공부했는데 박사학위까지 받았습니다. 마이클 프랭스는 후일 문학이나 음악이나 같은 예술이기에 크게 차이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관련내용보기 - http://music.naver.com/todayMusic/index.nhn?startDate=20110806



목소리 만큼이나 분위기있게 생긴 마이클 프랭스(Micheal Franks)의 젊은시절(현재 70대 중반의 할아버지)




1977년 발표된 안토니오의 노래는 앞에서 이야기한것처럼 보사노바의 대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에 대한 찬사로 우리나라에는 80년대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시적인 가사와 감미로운 멜로디 그에 어울리는 중저음의 매력이 어우러진 노래로 지금 다가오고있는 가을이면 항상 생각나는 노래중에 하나입니다.



안토니오스 송




라이브












Sleeping Gypsy                  - 1977




Side one


1."The Lady Wants To Know"   4:45

2."I Really Hope It's You"   4:54

3."In The Eye Of The Storm"   5:55

4."B'wana-He No Home"   4:57




Side two


1."Don't Be Blue"   3:28

2."Antonio's Song (The Rainbow)"   5:03

3."Chain Reaction"   5:14

4."Down In Brazil"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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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치는 복서출신 오토바이광 빌리조엘 - 업타운걸 Uptown Girl 1983년

Posted by 하루하루 추억보관소
2017.08.23 03:00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빌리조엘은 우리나라에 상당히 서정적인 발라드 곡들을 히트시킨 뮤지션입니다. 특히 70년대 발표했던 'Honesty'나 본인의 이름을 널리알린 'Piano Man'은 당대의 빌보드 차트에 비교하면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상당한 인기곡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발라드곡들이 많이 인기를 얻었지만 정작 본인은 락커임을 공공연히 내세웠습니다.


빌리조엘은 세살부터 피아노를 치기시작했는데 어린시절 부모가 이혼했고 어머니와 같이 살았습니다. 독일 출신의 아버지는 젊은시절 클래식 피아니스트였고 빌리조엘의 이복 동생 역시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피는 못속인다고 하더니...


빌리조엘은 1949년생으로 지금으로는 따지면 우리나이로는 칠순이 다된 할아버지입니다.


1980년대에도 빌리조엘의 어니스티나 피아노맨은 상당한 인기가 있었습니다. 우리정서에 더욱더 맞는듯합니다. 1973년 발표된 피아노맨은 긴무명의 시절을 끊어주는 곡이었고 1979년의 어니스티는 미국보다는 우리나라나 일본등지에서 더욱 인기가 높았습니다. 



빌리조엘   피아노맨 Piano Man - 1973년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매우 높았던 곡   어니스티 Honesty - 1978년





피아노맨이후로 이름은 알렸지만 빌리조엘은 요즘으로 치면 노예계약 비슷하게 체결한 계약때문에 한동안은 명성이나 활동에 비해 돈이랑은 거리가 멀었습니다. 독자적으로 자신의 노래를 어필하기도 했지만 결국 열번째 앨범까지.. 이후로도 빌리조엘은 사고나 밴드 멤버등과 소송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업타운걸은 두번째 아내인 슈퍼모델 크리스티 브링클리가 뮤직비디오에 출연합니다. 두사람은 1983년에 만나 그해 결혼합니다. 여자관계가 사연이 굉장히 많았던 빌리조엘입니다. 첫번째 부인은 밴드 멤버 아내와의 불륜으로 맺어졌었고 이로인해 자살소동까지 벌였었는데 십여년 결혼생활후 이혼했고 두번째 만난 부인...  이후 다시 이혼하며 두번더 30년정도 연하인 딸뻘의 여자들과 결혼을 하게됩니다.





빌리조엘 - 업타운걸




빌리조엘의 외모는 당시 록키 시리즈로 인기 높았던 실버스타 스텔론과 비슷합니다. 실제로 빌리조엘은 십대시절에 아마추어 복싱을 했었고 상당히 전적이 좋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중 코가 함몰되었었고 당시의 부상때문에 복싱을 그만두었고 현재까지도 그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아일랜드의 보이그룹 웨스트라이프의 2000년도에 발표한 리메이크곡









An Innocent Man    - 1983



Side one


1. "Easy Money" 4:04

2. "An Innocent Man" 5:17

3. "The Longest Time"  3:42

4. "This Night"  4:17

5. "Tell Her About It" 3:52



Side two


6. "Uptown Girl" 3:17

7. "Careless Talk" 3:48

8. "Christie Lee" 3:31

9. "Leave a Tender Moment Alone" 3:56

10. "Keeping th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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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고 감미로운 에프알 데이빗 (F.R. David) - Words 1982년

Posted by 하루하루 추억보관소
2017.08.14 04:51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우리나라의 인기 팝송은 미국의 빌보드와는 조금 다르게 형성되는 것들이 은근히 많았습니다. 80년대의 미국의 팝음악은 전세계적인 인기의 시대였지만 빌보드 선정 연도별 히트곡을 보면 모르는 것들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히트치지 못한 것들도 여기저기서 볼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를 파고 들어온것은 유로팝으로 주로 클럽이나 요즘은 추억의 롤라장으로 불리는 댄스음악이나 유럽과 아시아에서만 히트친 발라드 곡들을 들수있습니다. 모던토킹 조이 런던보이즈등 댄스음악이 대부분.. 


지금 소개하는 F.R. David의 Words도 이런 부류로 넣을수 있는 곡입니다. 80년대 당시에 우리나라에서의 인기가 굉장히 높았습니다.


에프알 데이빗은 1947년 튀니지 출생으로 주무대는 프랑스였습니다. 70년대에는 반젤리스와 함께 미국 진출을 꿈꾸기도 했었지만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1981년 발표한 Words 앨범은 이듬해 영국에서 2위 및 전유럽 챠트를 대부분 석권하고 미국 빌보트 차트에도 올라갔지만 Top40까지 올라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아프리카에서도 대단한 히트를 쳤고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인기있던 팝송입니다.


당시에 이노래외에도 같은 앨범내에서 Music, Pick Up The Phone등이 연달아 히트치면서 80년대 중반까지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노래의 내용은 사랑을 나타내는것을 말로 표현하는건 너무 어렵다는 고백





뮤직비디오




방송







Words



"Words" (Robert Fitoussi)

"Pick Up The Phone" (Fitoussi/Richelle Dassin)

"Take Me Back" (Fitoussi/Darras)

"Music" (Frédéric Leibovitz/Darras/Sam Choueka)

"Someone To Love" (Fitoussi/Daniel Darras/Richelle Dassin)

"Rocker Blues" (Fitoussi/Dassin)

"Givin' It Up" (Fitoussi/Pepin)

"He" (Fitoussi/Pepin/Dassin)

"Porcelain Eyes" (Darras/Fitoussi)

"Can't Get Enough" (Fitoussi/Pepin/Das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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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 여자 애니 레녹스의 유리스믹스 -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1983년

Posted by 하루하루 추억보관소
2017.08.11 03:25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유리스믹스는 영국 출신의 듀오로 1983년 두번째 앨범인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의 동명 싱글곡이 전세계적으로 히트치며 이름을 날리게됩니다.

특히 남장한 애니 레녹스의 모습은 당시에 컬처클럽 보이조지의 여장처럼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중성적 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리스믹스의 여자 싱어를 시나이스턴과 혼돈하고 있었습니다. 중학생 시절이던 당시에 잘못된 정보를 봤거나 몇가지가 헛갈려서 생긴현상일듯 지금보니 그냥봐도 완전히 다른사람...

묘하게 음산한 분위기에서 달콤한 꿈이란 노래를 불러대고 있는 모습은 기묘한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뮤직비디오는 젖소까지 등장하면서 전위적인 느낌까지 들지만 정서적인 차이일수 있기는 하겠지만 분위기 이상의 모습은 나오지 못함..  뉴웨이브 신스팝이 새로움을 추구하긴 했지만 비주얼로 표현할수 있는 한계가 아무래도 있는데 그래도 지나친 정서과잉까지는 가지않아 노래와 어울리는편.. 아직 세기말이 지나기 이전시대이기에... 서사나 디테일한 묘사가 나올수있는 영화까지는 아니기에... 그렇지만 노래는 지금 들어도 최고...

애니 레녹스가 작사하고 데이빗 스튜어트가 작곡한 노래로 둘사이는 한동안 연인관계이기도 했습니다. 애니 레녹스는 1954년생이고 데이빗은 1952년생



지금 80년대 팝을 정리하면서 브리티시팝이 전세계에 끼친 영향을 새삼스럽게 되새겨 보고 있습니다. 왬 컬쳐클럽 듀란듀란 폴리스등등... 보통 유럽의 팝은 댄스음악을 연상하거나 고유의 언어로 불리어진 음악들로만 생각했는데 영국의 팝음악은 일단 언어적인 유리함을 가지고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던 시기에 좋은 뮤지션들이 조금이나마 더 주목을 받을수 있었던 상황으로 볼수 있겠습니다.

당시 뉴웨이브 열풍에서 시작한 브리티시 팝음악은 미국의 퍼포먼스와 결합된 흑인음악과 더불어 양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합니다. 80년대 수많은 스타들이 영국 출신이라는게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 80년대 팝음악과 90년대 가요를 중점적으로 듣고 소비하던 세대로 두시대의 특징은 아마도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대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누구나 어릴때 듣던 음악이 최고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우리 아버지도 TV에 나오던 90년대 가요들을 보면서 저게 가수냐? 하면서 남진이나 나훈아 정도는 되야지.. 이런 이야기를 하긴했지만 르네상스 시기라 여겨진건 아주 다양한 새로운 시도들이 지금보면 어딘가 엉성해도 참신하게 많이 나온 시기였습니다. 가장 큰 동력가운데 하나는 아무래도 비디오가 중요하게 가미되어 가던 시절의 다양성이라고 볼수도 있겠습니다.

지금의 가요는 굉장히 세련되었지만 의외성이 적어 금방 지치고 이전보다 리메이크 곡들도 많아 묻어가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복면 가왕 같은 프로를 보면 의외의 가창력에 깜짝 놀라지만 참신하고 번뜩이는 개성같은걸 느끼기는 어렵고 발붙이기도 어려운 현실인듯...


1983년 영국차트 2위 미국 빌보드 1위를 차지한곡 Sweet Dreams


뮤직비디오


라이브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1. "Love Is a Stranger"

2. "I've Got an Angel"

3. "Wrap It Up" (featuring Green Gartside)

4. "I Could Give You (A Mirror)"

5. "The Walk"

6.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7. "Jennifer"

8. "This Is the House"

9. "Somebody Told Me"

10. "This City Never Slee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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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티시 신스팝 듀오 야주(YAZOO) - Don't go 1982년

Posted by 하루하루 추억보관소
2017.08.09 03:54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야주(Yazoo)는 80년대 잠깐 활동한 신스팝 듀오입니다. 야주라고 하면 누구야? 할수도 있겠지만 사십대면 노래를 듣는순간 아아 이노래 할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지금까지 이팀의 이름을 지금까지 야즈로 알고있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야즈(Yaz)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유는 미국에 이미 야주라는 이름의 밴드가 있어 소송위험이 있었는데 이것을 피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80년대 이제는 고인이된 김광한이 진행하던 쇼비디오자키의 음악소개 코너에 쓰이던 곡입니다. 지금 들어도 강렬한 인상을 남길수 있는 곡입니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소리였던 신시사이저를 매우 감각적으로 연주하면서 만들어낸 곡입니다.


야주는 컴퓨터를 전공하고 전자음악에 심취한 빈스 클라크가 당시 소속되었던 디페치 모드를 나온뒤에 앨리슨 모예를 극적으로(둘은 같은 동네 살았고 어릴때 같은 음악학교를 다니기도 했는데 마주친적이 별로없어 서로 존재를 몰랐다고 합니다. 클라크는 이후에 모예의 노래하는 모습을 몇번 본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만나 듀오를 이루었습니다.


앨리슨 모예는 어릴때부터 리듬앤 블루스에 심취해있어 태생적으로는 전통주의자라고 밝혔는데.. 야주 결성은 앨리슨 모예가 블루스 밴드를 결성하고 싶다는 광고를 냈는데 이에 빈스 클라크가 연락한것..  


하지만 빈스 클라크는 야주의 앨범을 1회성으로 생각했기에 2번째 앨범을 생각하고있지 않았기에 모예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우여곡절끝에 2번째 앨범이 나온건 클라크가 1년사이에 2번의 밴드 탈퇴가 이미지상 좋지않을거란 주변의 조언이 먹혔기 때문인데 녹음과정은 서로 매우 소원했기에 삐걱거렸고 아침에 빈스클라크가 음악작업을 저녁에 모예가 녹음을하기에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채로 4달간의 작업이 끝나고 발매한지 얼마못가 덜컥 해체하게됩니다. 


그룹이었으면 해체를 할수도있지만 멤버 교체를 하거나 하겠지만 듀오의 경우에는 솔로로 전향하기 쉬워 깨지는 경우가 많은것 같습니다. 유명한 듀오의 몇몇 경우를 보면 왬은 워낙 조지마이클쪽에 무게가 월등하게 실려 예정이 되었다고 볼수 있었고 사이몬앤 가펑클의 경우도 서로의 재능에 무게를 두고 있었고 일하는 스타일등 성격상 깨진 경우이고 모던 토킹은 싱어인 토마스 앤더스의 아내 때문에 깨졌다고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대중음악 스타들은 어린나이에 정상에 서게되면 아무래도 사회경험 부족으로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에게도 불리한 결정들을 할 확률이 높은것 같습니다. 성격이나 인성의 문제라던가, 지금의 인기 그대로 혼자 독식할수도 있겠다는 착각이라던가, 자기만의 세계를 주장하다 둘다 놓치거나.. 어떤 결정이던 인생의 굴곡이고 흐름이겠지만 이때는 어려움도 한순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엄청나게 오랜 시간을 돌아서 제자리에 돌아오거나 영영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더군요... 잘나갈때 부족한 몇가지때문에 아득바득하는것보다 모든것에 감사해야 하는것도 인생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야주 활동시절 빈스 클라크와 앨리슨 모예





2008년 재결합 과정에서 빈스 클라크는 당시에 자기생각만하고 남과 의사소통하는 기술이 많이 부족했다고 했습니다. 밴드가 해체된건 이런 와중에 클라크와 모예가 인간적으로 친하게 지내게될 시간이 적었기에 결론적으로 많은 오해와 의사소통 부족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해체이유는 빈스 클라크는 자신이 하려던것만 할생각이었고 모예와 친해질 시간도 없고 그럴 생각도 별로 없었던 상태(둘다 당시에 이십대 초반)에다 클라크는 밴드를 지속할 생각도 별로 없었던 상태였기에 모예는 기분이 많이 상했는데 그와중에 서로를 이해하려는 대화같은 것도 없었기에 그냥 해체된 상태..


영국 챠트를 휩쓸던 이들은 미국에서도 적게나마 이름이 알려졌는데 이후 이들의 앨범은 오랜기간 판매되면서 1989년에는 판매량이 백만장을 넘어서게 됩니다.


당시의 뮤직비디오들은 기괴한 형태의 컬트영화같은 장면들이 많이 나오네요..





뮤직비디오




공연



1982년 발매된 야주의 1집 Upstairs at Eric's



Upstairs at Eric's




Side one


"Don't Go" (Vince Clarke)

"Too Pieces" (Clarke)

"Bad Connection" (Clarke)

"I Before E Except After C" (Clarke)

"Midnight" (Alison Moyet)

"In My Room" (Clarke)




Side two


"Only You" (Clarke)

"Goodbye 70's" (Moyet)

"Tuesday" (Clarke)

"Winter Kills" (Moyet)

"Bring Your Love Down (Didn't I)" (Moy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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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아이돌 그룹 듀란듀란 - The Reflex 1983년

Posted by 하루하루 추억보관소
2017.08.08 04:35 영상 속으로/뮤직비디오

듀란듀란은 수려한 외모와 뉴웨이브 신스팝계열의 신나는 음악을 했습니다. 컬쳐클럽과 마찬가지로 영국 출신이고 같은 시대에 비슷한 형태의 노래들을 선보였습니다.  80년대 당시에 컬쳐클럽이 보이조지의 원맨밴드 비슷한 형태였다면 듀란듀란은 존테일러나 사이먼 르본 닉로즈등 멤버들이 골고루 인기가 있었습니다.


듀란듀란은 특히 여학생 팬들이 많았던 기억.. 노래도 가볍고 즐거웠던데다 존테일러나 닉로즈 그리고 사이먼 르본은 수려한 외모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주변에서 필통이나 연습장등등에 잡지같은데서 오려붙여놓은 사진들을 꽤봤던걸로..


지금세대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 가운데 하나는 80년대 당시는 유럽에 대한 신비한 동경 비슷한 것이 있던 시절로 유학이나 업무등 특별한 이유가 없는한 외국에 나가기 어려웠던 시절이었기에 실제보다 많이 신비화된것들이 있다고 할수있습니다. 해외여행 자유화이후 상상하던 유럽의 모습들을 실제로 본이후에 실망감 비슷한 것을 토로하던것들도 종종 보았습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컬쳐클럽이 반짝했었다면 항상 같이 언급되던 듀란듀란은 지금까지도 건재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여러번 방한공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당시 영국 출신의 노래는 경쾌한 느낌이 많았습니다. 컬쳐클럽 듀란듀란 그리고 왬까지 가세해 80년대 내내 브리티시팝 의 뉴웨이브 열풍을 이끌어간 그룹이었습니다.


신시사이저 소리는 지금은 한물간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지만 당시에는 가볍고 경쾌함을 바탕으로한 새로운 정서를 대변하는 방법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초반에는 신시사이저 소리가 가볍다고 반대하는 운동도 있었지만 뉴웨이브 그리고 신스팝으로 불리던 음악은 80년대 내내 관통하고 있습니다. 이후 힙합이나 레게등이 유행하게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되었습니다,


듀란듀란은 1978년 영국에서 존테일러와 닉로즈가 결성했고 여러번 멤버들이 바뀌는 가운데 앤디 테일러 로저테일러가 합류했고 이후 보컬로 사이먼 르본이 들어오면서 익히 알고있는 듀란듀란 5명의 멤버가 완성됩니다. 처음에는 테일러란 성이 많아 반헬렌처럼 형제간인줄 알았는데 관련이 없는것 같고 그냥 우리나라에 김씨성 많은거랑 비슷..


듀란듀란이란 팀명은 바바렐라라는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악역 인물인 닥터 듀란듀란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듀란듀란이 전세계적으로 인지도를 가지게된것은 3집에 수록된 The Reflex 입니다. 빌보드 1위를 차지하는데 그이전부터 알려진 곡들이 있었지만 이곡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됩니다. 


듀란듀란은 이후 멤버들이 찢어져 아키디아 파워스테이션등으로 그룹이 갈리게됩니다. 당시에 팬들의 반대 목소리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듀란듀란 시절보다 주목받는게 분산되었고 결국 다시 재결합 수순을 밟습니다. 대부분 재결합 이후 이전보다 주목을 못받게되지만 이후에도 몇개의 히트곡이 나왔고 현재까지도 그룹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듀란듀란의 노래를 처음 들은건 라디오를 끼고살던 1983년 후반부터 1984년까지로 New Moon on Monday였고 이후 리어카에서 구입한 그동안 나온 여러 앨범이 혼합된 힛트곡 테이프를 구해 들으면서였습니다. Girls on Film , Union of The Snake , Hungry Like The Wolf , Rio , 이후로도 A View to a Kill , The Wild Boys, Notorious 등등 무수한 히트곡들이 쏟아져 나왔고 한시대를 풍미한 밴드입니다. 멤버들의 외모때문에 당시에는 음악적으로는 어느정도 평가절하되기도 했었습니다.


외모로인해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존테일러는 여러번 개인활동을 시도했지만 듀란듀란으로 활약할때만큼 인기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드리안 라인 감독의 나인하트위크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 나온것이 기억납니다.  I Do What I Do


80년대 중반까지 인기를 양분하며 활약하던 컬쳐클럽이 보이조지의 약물중독으로 인해 밴드활동에 브레이크가 걸렸지만 듀란듀란은 약간의 이합집산의 과정이 있기는 했지만 꾸준하게 활동하던것과 비교해볼수 있는 부분입니다. 


나이들어 되돌아보니 보이조지의 재능은 뛰어났지만 결국은 성공적으로 살아남는자는 꾸준히 마지막까지 활동하는자가 되었습니다. 80년대 우리나라 정서에서는 컬쳐클럽보다는 듀란듀란 팬이 더 많았습니다. 여장 남자인 보이조지가 특이하긴 했지만 외모가 훤칠한 아이돌 밴드와 비교해서 호감을 가지기에는 한계가 있었기도...



뮤직비디오









1989년 내한공연 당시 영상







Seven and the Ragged Tiger



1. "The Reflex"

2. "New Moon on Monday"

3. "(I'm Looking For) Cracks in the Pavement"

4. "I Take the Dice"

5. "Of Crime and Passion"

6. "Union of the Snake"

7. "Shadows on Your Side"

8. "Tiger Tiger"

9. "The Seventh Str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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