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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람/일상에서 만남

군가산점 제도와 군대와 육아 이야기

햇살과산책 2007. 7. 2.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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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는 남자들에게는 엄청난 안주거리지만 여자들은 끔찍히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역으로 임신과 육아에 관한것은 미혼의 남자들에게 흥미있는 이야기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몇년 있으면 민방위도 끝나는 시점이라(조금 서글프기도 합니다)
가산점제도 같은것은 저에게 현실적으로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주마등처럼 스치는 군복무 시절이 떠오릅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네살배기 아들을 생각하니 전혀 남의 일만도 아닙니다.
20여년후에 과연 우리나라가 모병제로 바뀔까?
통일도 안된 상태고 설사 통일이 되었다 해도 동북아 정세를 고려하면 어려운 이야기 입니다.
군사대국들 사이에서 모병제 전환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하며 주변에 많은 평화적인 장치들이 있다해도
현실적으로 확률 10%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사는 수준으로봐서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한 이리저리 빼돌릴수도 없을테고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신의아들(군복무면제자. 요새도 쓰이는지 모르겠네요)을 바라지 않습니다.

1991년 의정부에서 기차타고 자대배치 받는다고 좋아했더니만 북쪽으로 끝까지 갔습니다.
훈련끝나고 자대배치 받자마자 유격훈련 받을때 고참들이 엄청 꼬였다며 놀려대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있던곳은 교대로 철책에 들어가는 곳이라 유격을 두번 받으면 엄청 꼬인 상황이긴 합니다.
올해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돌았지만 결국 철책들어가기 직전에 또 받았습니다.
이등병때는 작업의 기억밖에 없습니다. 몇달전에 보도된 타이어사건이 터진곳이 바로 그곳중에 하나입니다.
나무지고 산에오르고(832고지, 높이는 그저그렇지만 산세가 아주 험한곳입니다)
산밑에 텐트치고 몇달 살았습니다(이것은 목적을 가진 탐험이나 캠핑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때는 비상걸려 트리만들다 그 산꼭대기에 올라갔던 기억이 납니다.
겨울되니까 제설작업 아니면 훈련 둘중에 하나만 시키더군요.
눈한번오면 보통 사나흘은 눈만 치우다 볼일 다봅니다.
나중에 철책들어가서는 육십년대에 지어진 막사에서 영하 삼십도가 어떤건지 체험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눈오면 낮에 잠안자고 치우기도 합니다. 잘못하면 부식차량이 못옵니다.

우연인지 운이 좋았는지 군대에서 구타당한 기억이 없습니다.
얼차려를 심하게 받았던 기억은 나지만
방독면쓰고 산악구보하기,1시간마다 깨우기,반합에 대가리박고 음악감상하기,한쪽 침상에 발대고 맞은편 침상에 대가리박기등등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직접적인 구타를 당하지 않은건 당시로서는 운이 좋았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아마 고참들 연애편지 대필을 조금 해줬었고 제대직전 간부들의 자기소개서같은것 쓸때 도움준게 조금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저는 20대때 동안이었는데(지금 제모습을 보면 웃기지 말라고 하지요, 머리도 조금씩 빠지고 배도나오고...지금은 동안열풍도 있고 했지만 당사자는 괴로운일이 꽤 있습니다. 서른살 무렵에 담배살때 신분증보자고 할때는 겉으로는 웃어넘기지만 허탈할때도 있었습니다. 더불어 일상적으로 무례한 경우를 당할때도 많았습니다.) 어딘가 유약해 보이는 점과 아주 가끔씩 면전에서 고참들을 실랄하게 꼬집어 이야기하던 것들이 역으로 작용해 엄청난 유머가 되는 현실이 있었습니다.
또한가지는 바로윗 고참들이랑 8-9개월 차이나는데 나이가 동갑이라 둘이있을때는 야자하면서 친하게 지낸것도 한몫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독립중대와 독립소대에서만 생활해서 다른곳과 불필요한 경쟁이 적었던점도 있습니다.

제대한지 14년정도 흘렀지만 아직도 생각나는 가장 괴로운건 마음대로 할수있는게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육체적 고통 군대에서 몸을 많이 쓰기는 하지만 사람사는 곳이라 죽을정도로 부려먹지는 않습니다.
신체적으로 불규칙한 생활을 했던 사람은 오히려 약이 될수도 있습니다.
50kg 간신히 넘던 몸무게가 60kg을 넘었던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반대로 비만인 사람은 살이 빠집니다.

군대에서 사고사나 자살이 대부분이지 과로사는 별로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운전병출신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졸음운전으로 아찔한 순간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전방에서 옆중대에서 지뢰밟아 죽었을때 아찔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옆산에 있었는데 아침나절에 들려온 폭음에 놀라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독실한 종교인이었던 대대장의 죄인처럼 구겨져있던 얼굴이 떠오릅니다.
길이 아닌곳은 가지말라던 철칙이 있던곳이었는데...
문제는 역시 심리적 고통입니다.
사회였다면 도저히 안되면 때려칠수도 있고(현실적으로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만..)
직업군인이던 당시의 인사계는 장기복무 신청한 애들을 불러놓고 몇번씩 다시 생각하고 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군복무중 사고로 사망한 아들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리 권할만한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자기선택에 따른것과 아닌것은 나중에 미치는 영향이 다릅니다.
가산점이 문제시될때 따라오는 것중에 하나는 평등권입니다.
평등이란 것은 균등한 권리를 처한 상황에 상관없이 균일하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한 형평성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출산이나 육아가 힘든것은 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은 잘아실겁니다.
미혼이나 아이가 없는분이 머리속으로 막연하게 느끼는 것과는 사뭇 차원이 다릅니다.
장애인 문제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군대문제도 비슷합니다 갔다오지 않은 분들이 머리속으로 느끼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마초주의나 남성우월주의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초점을 남녀평등권에 대입시키는 것은 오류가 있어보입니다.

이부분은 사안에 따라 각개 적용 시키는 것이 적절하다 여겨집니다.
이이야기가 유효하다면 군가산점 문제는 적절한 합의후에 적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집니다.
솔직히 가산점이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 사안을 접하고 토의하는 과정에 대한 불만은 생깁니다.

남녀 평등을 떠나 사회에 기여한 부분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서 적절한것인지 아닌지 의견을 나누는 것이 옳다고 여겨집니다.살다보면 느끼는 것중에 하나가 사회적으로 굳어진 것들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에 대한 적절한 평가없이 평등을 논의하면 친일파와 독립운동 후손들의 삶이나 기타 부조리한 사회현상에 대한 우리사회의 접근과 해결방식 때문에 엉뚱한 사람들이 수혜를 받는 현실이 많아집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말씀드리면 미필자나 여자들이 엉뚱한 수혜를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산점 문제만이 아닌 전반적인 사회 공헌에 대한 평가와 보상이 인색한 현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아마 일정 한도내에서 군필자 우선채용이라던가 이런식으로 접근했다면 저도 반대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현재 여러가지 현실을 고려하면 불필요한 사회갈등을 조장할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과밀한 경쟁을 필요로하는 사회구조를 생각해봅니다)
별개의 문제지만 장애인의 경우는 이런제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도입이 어느정도 합당하다고 여겨집니다.
이유는 일반인처럼 살아가는데 몇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가산점은 군필자의 잃어버린 시간만큼의 사회적인 배려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임신과 육아로 몇년씩 사회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분은 일정기간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더불어 육아문제로인해 일을하면서도 여러가지 문제에 부딪칩니다.
이부분은 일정부분 사회제도적 차원에서 개선점이 필요하다고 느낄것입니다.
사회적불평등으로 인해 발생한 여성의 문제는 사안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찾아 개선점에 접근하고 사회적으로 공론화 시키는 것이 옳을것 같습니다.
가산점 문제도 비슷한 차원에서 입장이 다르다해도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접근하면 크게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혜택을 받는 대상이 사회적 책무를 저버린 사람들도 아니고 다른 각도에서 볼때 입장과 전개된 양상은 다르지만 피해를 본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끼리 싸우는 양상이 될수도 있습니다.

우스개소리지만 군필자들과의 평등 때문에 군미필자는 무조건 학교졸업 2년후부터 구직활동이나 시험을 볼수있게 해야 한다는 법을 발의한다면 미쳤다는 소릴 들을것입니다(현실성 전혀없는 농담입니다)

사족으로
육아는 진짜 힘든 영역중에 하나입니다.
가끔 출산과 육아가 힘드냐 군복무가 힘드냐 하는 논쟁을 하는것을 보면 재미있을때도 있지만 씁쓸할 때가 더 많습니다. 결론은 둘다 힘듭니다. 이것은 양비론적인 것이 아니라 비교의 대상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힘든사람끼리 누가 더힘드네 하면서 아웅다웅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 힘든점을 격려해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보충대에서 입대할때 입었던 옷을 보내준 저의 옷가지들을 보고 밤새 우셨다는 어머니의 모습을 묘사한
동생의 편지를 읽으며 느꼈던 짠했던 마음을 돌이켜봅니다.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경제 규모를 고려한다면 개인이 부담해야될 짐이 너무 많고
일정한 공헌에 대한 평가나 보상에 매우 인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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