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명량 - 시대를 초월한 본보기

Posted by 하루하루 추억보관소
2014.08.12 01:55 영상 속으로/영화

솔직히 이순신은 어린시절 너무 귀에 닳도록 들어서인지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십대에 들어서면서 너무 식상한 구시대적 인물 혹은 범접할수 없는 아니면 나중에 모CF에 나온 코믹한 이미지까지.. 이후로 세세하게까지 파고들만큼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는데

이순신을 다시 조우한건 김용옥의 나는 불교를 이렇게본다에서 썩어빠진 조정을 뒤엎을수 있었지만 충신으로 남아있는 이순신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던 대목과 이와 비교해 우리와 일본의 가장큰 차이점이었던 왕권제와 봉건제 사이의 차이로 인한것으로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가지지 않는 부분이 비교의 대상이기도 했는데...

최근 이순신에 관한 영화는 박중훈이 나왔던 천군이었는데 물론 가상을 다룬 것이었기에 논의한다는것이 우습지만 가
까운곳에 있는것같지만 그만큼 일반 대중과는 일정한 거리감이 있었던 인물 아마 이순신만큼 무조건적 존경을 받는 인물이 그의 실제 행적에 대해서는 매우 무지한것이 일반적인 현실

하지만 매우 매력적인것이 이순신은 구체적으로 파고들어가 알면알수록 대단한 인물인데 사십대 우리세대에서는 박정희시절 정권미화차원에서 이용했을뿐 그는 내가 알고있던 옅은 지식을 넘어서 구체적으로 들어갈수록 위대한 인물됨을 알수있는데 강직한 원리원칙주의자였던 그는 불의와 타협함이 없었고 강한자의 비리를 보고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넘어가는것이 없었고 약한자에게는 넉넉한 인품을 보여줬지만 군인으로서의 군율은 매우 엄격히 지키는 공사 구분이 분명했던데다 절대군주임에도 자신을 끝까지 시기하고 권력의 위협적인 세력이 될수있다 생각하면서 두려워한 동시에 폄하하던 선조였건만 그로인한 것들을 알고있었지만 사적인 감정때문에 국가와 백성을 도외시하지 않았던 위대한 인물로 백성들의 절대적 지지와 명과 일본에서조차 그의 능력과 인간됨을 존중해주던 인물


지난 8월2일 기억에서조차 지워졌던 충남 아산 현충사를 방문

이순신이 서울에서 탄생과 유년시절이후 젊은 시절을 보낸곳으로 현재도 이순신 묘지와 사당이 있는 고향과 같은곳

기억속의 현충사는 전부 사라졌는지 처음보는곳을 방문한 느낌

최근 다니기 시작한 왕릉들과 비교해도 매우 정돈이 잘된 공간으로 입구에는 기념관까지 생긴듯

현충사 방문은 별도 포스팅을 하기로하고


영화 명량은 솔직히 말해 웰메이드 영화는 아니지만 시기적으로 적절한 시점을 타고 나온 작품 

풀어서 말하면 영화를 잘만들었다기보다는 지금 현재 보고싶은 영웅적 인물을 묘사했다는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느낌


물론 다큐를 바란건 아니지만 비운의 형제로 모두 이순신에 당했건만 강력하게 떠올라야할 구루시마역의 류승룡은 존재감이 너무 없었고 그의 형 수군은 일찌기 당포해전에서 이순신의 함대에 궤멸당했는데 당시 묘사된 것으로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없이 싸우다 화살 열발을 맞고 소리없이 울며 쓰러진것으로 나오는 것으로보아 상당히 용맹한 집안인듯 이부분이 오버랩되었다면 좋았을법하지만 영화에서는 물론 설정이지만 이순신의 칼아래 목이 잘리는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이순신의 대장선은 이날 초반에 혼자 분전하기는 했지만 조선수군에 상대적으로 불리했던 백병전은 없었던 것으로 추측되고있고 구루시마는 왜인으로 우리측에 귀화한 준사가 이전 상관이던 구루시마의 시체를 바다에 돌아다니는걸 발견했고 이순신이 이를 끌어올리게 만들어 여러토막내고 목을 달아놓았다는 기록 구루시마 집안은 이후 정쟁구도에서 도쿠카와이에야스에게 멸문지화를 당하며 현재는 거의 명맥도 사라진 상태로 초라한 주검없는 묘지만 남은 상태


임진왜란 초기 조선의 유일한 희망이던 수군.. 한산대첩을 비롯한 초기의 연전연승은 국토의 대부분을 상실한 실의에 빠진 조정과 백성들에게 최고의 희망이었고 현실적으로 일본군의 해상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평양까지 진격해 의주의 선조를 위협하던 고니시 유키나카의 군대를 주춤하게 만들었고 결국은 전라도까지 내려오게 만든 계기가 되었는데 당시의 무능한 조정은 고니시측이 짜낸 머리로 정유재란 당시 라이벌이던 가토기요마사의 군대가 부산으로 재차 침공할것이라는 정보를 흘렸고 물론 가토기요마사가 패하길 바랬다기보다는 이순신을 공격하거나 모함을 하기위한 수단이었는데 이런 노림수를 못알아채 빨리 공격하라는 조정의 명령이 떨어졌지만 이순신은 당시 부산과 부근의 왜성들로인해 자칫 역공격당할것이란 판단아래 움직이지 않았는데 좁쌀마인드 선조는 이를 왕명의 거역이라면서 이순신을 잡아들였고 이순신에 비하면 많이 역량이 모자란(무장으로서의 용맹은 판단하기 어렵겠지만 그는 이순신에 비하면 전략적 머리라는 측면에서는 비교한다는것 자체가 우습게 보이는 평범한 인물) 원균이 등용되었고 그역시 미적거렸지만 권율의 곤장까지 맞아가며 출전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을 거의 궤멸상태로 빠트리면서 다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초래 이런 상황에서 선조의 사과까지 받으면서 다시 나서게된 이순신 하지만 상황은 최악이었고 여기까지가 명량대첩이 있기전 상황..



영화는 몇가지 설정들이 사실과 다르기는 하지만 2시간이라는 제약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일단 배설의 이순신 암살 및 안위의 화살에 죽는 장면은 영화적 픽션 물론 배설이 신병을 핑계대고 도망간것은 맞지만 그의 이전 이력은 원균 함대에서 도망친 12척의 배를 이끌로 나온 인물로 결과적으로는 이순신의 마지막 전력이 되어주었고 그는 전란이후 이후 권율에게 붙잡혀 참형당했고 구루시마의 이순신 저격수와 폭파선과 사라지는 임준영 역시 전체적 상황 묘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기위한 영화적 설정.. 다만 한동안 제기되었던 쇠사슬을 울돌목 지형에 이용했을것이란 추측은 나오지 않았는데 현재로서는 쇠사슬 이용은 없었다는것이 대부분의 중론 그러나 명량대첩당시 인근의 백성들이 어선을 끌고나와 뒤에 배경처럼 서있어 조선수군의 규모를 왜군들이 오인케 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대장선을 꺼내려는 장면은 설정이라해도 너무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었고...


한시간 내내 펼쳐진 해상전투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하는 몰입감을 가져왔지만 역시 상상을 충족시켜줄 정도는 아니었는데 앞으로 나올 노량과 한산도에서는 어떻게 묘사를 해줄것인지..


지금 현재시점에서 영화 명량의 이순신이 이토록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것은 매우 어려움에 처한 현재의 상황을 생각케해주는 것인데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에 자신만을 생각하는 엉망진창인 조정과 그세력들 그리고 그러함에도 온갖 악조건속에서도 개인의 안위보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타개해가는 영웅의 모습에서 감정이입을 해나가는것으로 영화를 보는중 몇번 울컥거리기도했는데 



하지만 결국 명량이후 이순신은 노량에서 영웅적 모습으로 죽어갔고 이후 많은 논란을 가져오기도 했는데 고니시에 매수된 명나라 제독 유정의 명을 따르지 않고 노량해전에 출전을 감행 이전에 이순신의 인품에 감화된 진린 제독까지 합세하면서 최후의 승리를 이끌었지만 갑옷을 입지않은 상태로 추격하다 탄환에 쓰러지면서 유명한 말 나의 죽음을 알리지말라는 이야기를 남겼는데 자살설이나 은둔설등 있기는 하지만 억측과 추측일뿐 개인으로서 분명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교차했겠지만 그의 어릴때부터의 행적을 살펴보면 불의를 보면 상대가 누구이던간에 참지못하는 성격과 올곧은 심성 무관이지만 선비같은 꼿꼿한 모습을 보여준 그였기에...


어릴적 역사 선생님들은 모두 지적이고 예리한데다 선각자적 모습까지 갖추신 분들이었는데 요즘은 역시 여기에다 재미가 있어야하는듯..


설민석 인강 - 명량


2004년부터 방영되어 화제가 되었던 김명민의 불멸의 이순신을 못봤는데 사극을 좋아하는데 왜못봤을까 생각해보니 당시 아내가 임신중이라 시끄러운 폭음이 싫다기에 못봤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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